서브스턴스(2024), 공포, 개인의 정체성

2025. 2. 10. 16:21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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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서브스턴스'의 주 포스터

 

"나는 누구인가?" 라는 물음은 영원히 풀리지 않을 철학적 숙제처럼 느껴집니다. 2024년 12월 개봉한 영화 <서브스턴스>는 이 질문을 SF 장르에 담아 관객의 머릿속을 뒤흔들었습니다. 젊음과 아름다움을 둘러싼 사회의 집착이 한 개인의 정체성을 어떻게 산산조각 내었는지, 영화는 날카롭게 조명하며 단순한 스릴러를 뛰어넘어 관객에게 깊은 울림을 남기고 있습니다.


1. 육체의 변신, 정체성의 분열

주인공인 엘리자베스(데미 무어)는 한때 화려한 스타였습니다. 그러나, 세월의 나이와 함께 그녀는 점점 더 대중의 관심 속에서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50세가 되던 해 그녀는 결국 해고를 당하게 됩니다. 돌아가던 길에 차 사고로 병원에 실려간 그녀는 '서브스턴스'라는 약물을 권유받게 됩니다. 절망 끝에 그녀는  약물을 통하여 '수'(마가렛 퀄리)라는 젊은 육체로 재탄생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변신은 단순한 외적 변화가 아니었습니다. 7일간의 시간 제한과 엄격한 규칙 아래, '수'는 점차 독립적인 의지를 갖기 시작합니다. 엘리자베스의 기억과 감정을 공유하면서도 새로운 욕망을 키워가고 있는 '수'의 모습은, 정체성이란 과연 육체와 기억의 조합에 불과한지 의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영화는 외형적 젊음이 내면의 정체성을 대체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지만, 동시에 '변화' 자체가 정체성의 일부일 수 있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엘리자베스와 '수'의 경계가 흐릿해질 때마다 관객은 불안해집니다.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나"가 정말 동일한 존재인지, 아니면 끊임없이 새로워지는 존재인지, 영화는 이 질문을 우리의 무릎 앞에 던져놓습니다.

 

2. 시각적 언어로 그린 내면의 풍경

<서브스턴스>의 미장센은 정체성의 혼란을 감각적으로 구현하고 있습니다. 푸른빛 필터와 물속 장면은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무너뜨리며, 엘리자베스의 불안을 공기처럼 스며든 듯 보여주고 있습니다. 카메라는 좁은 프레임과 긴 그림자를 활용해 '엘리자베스'와 '수'의 긴장감을 시각화 하였습니다. 두 존재가 마주할 때마다 화면은 마치 거울 앞에 선 듯 대칭을 이루며, 관객 역시 자신을 반추하게 만듭니다.

특히 '수'의 독립적 존재감은 점증하는 색채 대비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초반의 차가운 푸른 톤에서 점차 따뜻한 색조로 변해가는 '수'의 공간은, 그녀가 엘리자베스의 그림자를 벗어나는 과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미학적 선택이 아니라, 정체성의 변주를 시각적 언어로 풀어낸 영화만의 독창성입니다.

 

3. 사회가 강요하는 '완벽함'에 대한 경고


영화는 개인의 정체성 탐구를 넘어, 사회적 비판으로 확장되고 있습니다. 젊음과 아름다움만을 절대적 가치로 삼고 있는 세태가 어떻게 개인의 존재감을 위협하는지, <서브스턴스>는 냉정하게 파헤치고 있습니다. 엘리자베스가 '수'로 변신하는 선택은 결국 사회가 만든 기준에 굴복한 결과였습니다. 그러나 그 선택은 그녀를 구원하는 대신, 정체성의 분열이라는 더 큰 함정으로 이끌고 가고 있습니다.

"기억하라, 당신은 하나다." 영화 속 반복되는 이 문장은 역설적으로 정체성의 유동성을 드러내 주고 있습니다. '하나'라는 단어가 강조될수록, 엘리자베스와 '수'의 경계는 더욱 모호해졌습니다. 영화는 이 모순을 통해 사회가 규정한 '완벽한 자기'를 추구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경고하고 있습니다.

끝나지 않는 질문: 당신은 누구인가?
<서브스턴스>는 편안한 해답 대신 불편한 질문을 선사하고 있습니다. 영화가 끝난 후, 관객은 여전히 "진정한 나는 어떤 존재인가?"라는 물음과 마주해야 합니다. 데미 무어의 투명한 연기와 감독의 시각적 혁신이 더해진 이 작품은 SF 장르의 한계를 넘어 예술적 깊이를 증명해 주었습니다.

단순히 영화를 '본' 것이 아니라, 영화 '속으로 들어간' 경험을 주고 있는 <서브스턴스>는 그런 여운을 남기고 있습니다. 우리가 매일 거울 앞에서 마주하는 모습이 진짜일까요, 아니면 사회가 원하는 가면일까요? 영화관을 나서며 누군가에게, 혹은 자신에게 던지게 될 그 질문이 바로 이 작품의 가장 강력한 힘일 것입니다.

 

영화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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